지난주 스토어에 한 어르신이 찾아왔다.
연세가 상당히 많아 보였다. 그런데 얼굴보다 먼저 모자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Korean War Veteran.
6·25 참전용사였다.
반가운 마음에 물었다.
“Sir, are you a Korean War veteran?”
그렇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한국을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분은 미시간에 사는 딸에게 보낼 생일선물을 가지고 오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그 따님이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겠구나.
묘한 기분이 들었다. 70여 년 전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왔던 사람이 지금 내 스토어에서 딸의 생일선물을 부치고 있었다.
배송 접수를 마치고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다가 또 궁금해졌다.
연세가 저 정도인데 어떻게 오셨을까.
“무엇을 타고 오셨어요?”
“내 차로 왔어요.”
나는 다시 물었다.
“Really? Did you drive here?”
그랬더니 테슬라로 왔다고 했다. 자율주행 기능을 이용했다면서 웃더니 엄지손가락까지 들어 보였다.
그분은 목적지를 넣으면 차가 운전의 많은 부분을 해준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그게 전부였다. 본인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그날 이후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운전을 못 하게 되는 날
은퇴까지는 아직 10년쯤 남아 있다.
돈도 생각하고 건강도 생각한다. 그런데 은퇴 후를 떠올릴 때 은근히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내가 운전을 못 하게 되는 날이다.
나는 원래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20년 넘게 매일 차를 타고 출퇴근했는데도 운전할 때 오는 긴장감에는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비 오는 밤 차선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도 싫고, 신호 없는 좌회전에서 반대편 차를 보며 타이밍을 잡는 것도 싫다.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양옆으로 붙어 달리면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젊을 때는 그냥 내가 운전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을 보면 밤 운전을 피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긴다. 헤드라이트가 번져 보인다고 하고, 고속도로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아예 차를 놓고 나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밤을 피하고, 고속도로를 피하고, 장거리를 피한다. 그러다 보면 자동차는 집 앞에 그대로 있는데 갈 수 있는 곳은 조금씩 줄어든다.
한국에 다녀올 때마다 미국과의 차이도 느낀다.
서울에서는 지하철, 버스, 택시, KTX가 있다. 자동차가 없어도 웬만한 곳은 갈 수 있다. 미국 교외는 다르다. 차가 없으면 가까운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일이 되는 곳이 많다.
그래서 은퇴 후 한국에서 사는 것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테슬라를 타고 온 그 참전용사를 보면서 질문이 조금 바뀌었다.
차 없이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할까.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먼저 올까.
차를 놓으면 같이 줄어드는 것
조금 찾아봤다.
운전을 그만둔 뒤의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미국 AAA 교통안전재단이 여러 연구를 종합한 자료를 보면, 한 장기 연구에서 운전을 중단한 사람의 친구·친척 사회관계망이 13년에 걸쳐 51% 줄었다.
처음에는 숫자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싶었다.
내 생활에 대입해 보니 조금 이해가 됐다.
교회에 간다. 친구와 점심을 먹는다. 병원에 간다. 장을 본다. 지금은 차 키만 들고 나가면 되는 일들이다.
운전을 못 하게 되면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택시를 부르거나 다른 사람 일정에 내 시간을 맞춰야 한다.
갈 수는 있다.
다만 예전처럼 내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
30대나 40대에는 먼 훗날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부모님이 언제까지 운전하실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갑자기 가까워진다.
조금 더 지나면 내 차례다.
테슬라 자율주행(FSD)은 어디까지 왔을까
테슬라의 자율주행은 이름만 들으면 자동차가 알아서 다 운전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2026년 8월 현재 이름 뒤에 Supervised, 즉 감독형이라는 말이 붙어 있다.
차선을 바꾸고, 교차로를 지나고, 좌우회전을 하며 목적지를 따라 상당 부분 스스로 움직인다. 그래도 운전자는 계속 도로를 살펴야 하고 필요하면 바로 개입해야 한다.
스토어에 왔던 그 어르신도 여전히 운전자였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시력이나 판단력, 반응 능력이 크게 떨어졌는데도 “테슬라가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할 수 있다. 지금의 자율주행(FSD)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의 부담을 상당히 덜어주는 기술이다.
웨이모는 단계가 다르다
웨이모는 구글과 함께 알파벳 산하에 있는 자율주행 회사다. 미국 일부 도시에서는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차가 실제 승객을 태우고 다닌다.
2026년 3월까지 사람이 운전하지 않은 상태로 달린 거리가 2억2천만 마일을 넘었다.
시험차 몇 대가 동네를 도는 수준은 이미 지났다.
안전 기록도 흥미로웠다. 2026년 7월 미국 고속도로손해보험협회(IIHS)가 웨이모와 같은 지역을 운행한 사람 운전자와 비교한 결과, 경찰에 신고될 정도의 사고율이 68% 낮았다.
물론 이 숫자만 보고 기계가 언제 어디서나 사람보다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운행 지역이 아직 제한돼 있고 모든 도로와 날씨에서 나온 결과도 아니다.
그래도 2억 마일이 넘어가면 나는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
서울에서도 이미 시작됐다
한국은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서울 강남에서는 밤에 카카오T로 자율주행택시를 부를 수 있다. 2026년 8월에는 운행 차량도 기존 7대에서 19대로 늘었다.
아직 웨이모처럼 운전석에 아무도 없는 서비스는 아니다. 시험운전자가 함께 타고 일부 상황에서는 사람이 직접 운전한다.
청계천에는 조금 더 낯선 차가 다닌다.
운전석도 없고 운전대도 없는 자율주행셔틀이다. 비상 상황에 대비한 시험운전자가 차량 안에 함께 탄다.
정부는 광주에서 자율주행차 200대를 이용하는 대규모 실증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목표는 2027년 레벨4 상용화다.
레벨4라는 말은 거창하지만 뜻은 어렵지 않다. 정해진 지역과 조건 안에서는 사람이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단계다.
서울에서 이런 기술이 갖는 의미와 미국 교외에서 갖는 의미는 조금 다를 것 같다.
서울은 면허가 없어도 지하철과 버스, 택시가 있다. 면허를 반납한 고령 운전자에게 교통카드를 지원하는 제도도 있다.
미국 교외에서는 운전을 놓는 순간 선택지가 훨씬 빨리 줄어든다.
서울 한복판에서 여든을 맞는 것과 대중교통이 거의 없는 미국 교외에서 여든을 맞는 것은 꽤 다른 노후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승객’이 되는 날이다
처음 이 글을 쓰려고 할 때는 테슬라와 웨이모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관심이 다른 데로 갔다.
밤 운전이 힘들어져도 저녁 모임에 갈 수 있는 것. 병원에 가기 위해 자녀에게 “혹시 오늘 시간 있니?”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것. 친구를 만나고 싶을 때 그냥 나갈 수 있는 것.
내게는 그런 쪽이 더 크게 보였다.
지금은 운전할 수 있을 때 자동차가 많이 도와준다. 언젠가 운전이 어려워지면 나는 운전석에서 내려와 그냥 승객이 되고 싶다.

그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빨리 메워질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스마트폰 앱도 계속 익숙하게 써두려고 한다. 서울의 자율주행택시도, 미국의 웨이모도 결국 앱으로 부른다.
여든에 처음 배우는 것보다는 지금부터 익숙해지는 편이 낫다.
다음 자동차를 살 때도 예전과는 조금 다른 것을 볼 것 같다. 연비, 디자인, 가격과 함께 운전자 보조 기능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관심 있게 볼 생각이다.
은퇴 후 어디에서 살지를 생각할 때도 ‘이동’을 조건에 넣으려고 한다.
집값, 날씨, 세금, 병원, 자녀와의 거리.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운전을 못 하게 됐을 때 여기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부모님이나 가까운 어르신에게 언젠가 운전을 그만두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이 질문은 필요할 것 같다.
“이제 운전하지 마세요.”
그 말은 쉽다.
병원은 어떻게 갈지, 장은 어떻게 볼지, 교회나 친구 모임에는 어떻게 갈지. 그다음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운전대를 내려놓고도 갈 곳은 남아 있어야 하니까.
그날의 엄지손가락
그 참전용사를 만났다고 해서 은퇴 후 한국에서 살 생각을 접은 것은 아니다.
한국의 대중교통이 주는 자유는 이미 현실이다. 미국 교외 어디에서나 탈 수 있는 완전자율주행차는 아직 미래다.
다만 내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전에는 이랬다.
“나이가 들어 운전을 못 하면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지금은 이런 쪽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얼마나 오래 움직일 수 있을까?”
스토어를 나가면서 그 어르신은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70여 년 전에는 젊은 군인으로 한국에 왔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테슬라를 타고 미시간에 사는 딸의 생일선물을 보내러 왔다.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가고 싶은 곳이 생겼을 때, 아직 갈 수 있다는 것.
필자 소개
미국 버지니아에서 26년째 같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과 사업, 미국 생활의 변화 속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다
본문의 자율주행 및 고령 운전 관련 내용은 2026년 8월 기준 Tesla, Waymo, IIHS, AAA Foundation,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자료를 확인해 작성했다. 기술과 운행 규정은 빠르게 바뀌므로 실제 이용 전에는 최신 정보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